2020년에 인피니티 Q50을 직접 구매해서 약 3년을 탔습니다. 그때의 선택을 지금도 가끔 되돌아보는데, 솔직히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스포티한 후륜구동 세단, 400마력에 가까운 힘, 하차감까지. 사고 싶은 이유는 충분했지만, 팔 때 맞은 감가를 생각하면 아직도 쓴웃음이 납니다. 그 경험이 인피니티라는 브랜드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차를 구매하기 전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원하는 차에 대하여 공부하곤 합니다.

Q50 구매후기
저도 처음엔 막연히 "일제 프리미엄 브랜드니까 믿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Q50 하이브리드 모델은 V6 3.5리터 엔진에 하이브리드 모터를 더해 합산 출력이 약 364마력에 달합니다. 여기서 합산 출력이란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모터의 최고 출력을 합산한 수치로, 실제 주행 시 두 동력원이 함께 작동할 때 낼 수 있는 최대 힘을 의미합니다.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 힘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륜구동(FR) 플랫폼 특유의 무게 배분 덕분에 코너링에서도 안정감이 있었고, 일부러 엔진음을 조금 남겨두는 튜닝 철학 덕분에 운전하는 재미가 살아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타보니, 이 차는 분명히 "운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차였습니다. 다만, 부족한 실내공간에 3년 뒤 차를 팔면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감가, 즉 차량 가치 하락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컸습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중고차 수요가 제한적인 인피니티 특성상, 같은 연식의 독일 브랜드 차량과 비교했을 때 잔존가치가 눈에 띄게 낮았습니다. 차는 좋았지만, 자산으로서의 차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때의 경험이, 차를 바라보는 가치관, 투자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우치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왜 구매할 땐, 결혼하여 아이 낳을 것까지 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잘못을 종종 탓하곤 합니다.
일본의 BMW
인피니티가 처음 출범한 건 1989년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런칭한 렉서스가 메르세데스-벤츠를 벤치마킹해 무소음·극정숙 고급감을 추구했다면, 인피니티는 BMW를 참고해 드라이빙 퍼포먼스와 스포티한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렉서스는 방음재를 철저히 활용해 엔진음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향으로 개발하지만, 인피니티는 의도적으로 엔진음 일부를 실내로 유입시키는 NVH(소음·진동·하시니스) 튜닝을 합니다. NVH란 Noise, Vibration, Harshness의 약자로, 차량 실내에서 운전자가 느끼는 소음, 진동, 거칠음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술 영역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초창기 인피니티가 이 정체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닛산 차량에 대배기량 엔진을 얹고 고급 마감재만 더한 뒤 프리미엄 가격을 붙이는 전략을 오랫동안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피니티 차에 닛산 로고를 그대로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전환점이 된 것이 나카무라 시로 디자인 총괄 체제하에서 2007년 전후로 발표된 컨셉트 카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인피니티만의 디자인 언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Q50을 기점으로 완전히 독자적인 외관 정체성을 갖추게 됩니다. 실제로 일본 내수 닛산 스카이라인(Q50의 내수명)에도 2014년부터 인피니티 그릴이 장착될 만큼, 디자인 차별화가 명확해졌습니다.
브랜드위기
제가 Q50을 팔고 나서 브랜드 상황을 다시 들여다봤을 때,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2018년 모기업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 구속 사태 이후 경영난이 가속화되면서 인피니티의 노후 차종들이 연이어 단종됐습니다. 2024년에는 세단 라인업의 핵심이던 Q50마저 단종되면서, 현재는 SUV 모델만 남은 상태입니다. 북미 시장 월평균 판매량이 24대 수준이라는 수치는 브랜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출처: Car and Driver). 프리미엄 브랜드가 월 24대를 판다는 건, 사실상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내 인피니티 딜러십들이 닛산 매장으로 통합 운영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인피니티가 판매 중인 라인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 QX60: 3열 미드사이즈 SUV, 북미 전용 생산 모델
- QX65: 출시 예정 쿠페형 SUV
- QX80: 풀사이즈 SUV, 북미 전용 생산 모델
세단이 하나도 없는 SUV 전용 라인업입니다. 인피니티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드라이빙 퍼포먼스, 즉 스포티한 주행 감각은 SUV 라인업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전동화 전략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EV 모델 출시 일정이나 플랫폼 경쟁력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브랜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인피니티라는 브랜드는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VQ 엔진과 F1 도전
인피니티 기술력의 핵심은 VQ 시리즈 V6 엔진입니다. VQ 엔진이란 닛산이 개발한 V형 6기통 자연흡기 엔진 계열로, 3.0리터에서 3.7리터까지 다양한 배기량 버전이 존재하며, 높은 고회전 출력과 내구성으로 북미 자동차 전문 매체 워즈오토(WardsAuto)가 선정한 '10대 엔진'에 10년 이상 연속 선정된 바 있습니다(출처: WardsAuto). 제 경험상 이 엔진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고회전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회전질감과 배기음은, 독일 차와는 또 다른 방향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최근에는 VQ 엔진 외에도 가변압축비 엔진인 VC-Turbo가 QX50에 탑재되면서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가변압축비 엔진이란 주행 상황에 따라 엔진 내부의 압축비를 가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엔진으로, 연비와 출력을 동시에 최적화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입니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도 인피니티의 도전은 기억할 만합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레드불 레이싱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으며 포뮬러 원(F1)에 깊숙이 관여했고, 세바스티안 베텔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영입했습니다. 르노 F1 팀과 ERS(에너지 회수 시스템) 공동 개발에도 참여했는데, ERS란 제동 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나 터보차저의 열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해 저장했다가 가속 시 재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로드카가 Q60 프로젝트 블랙 S입니다. 하지만 2020년을 끝으로 F1 스폰서십도 종료됐습니다. 인피니티가 Q50에서 보여준 드라이빙 감각은 분명히 진심이었습니다. 그 차를 타던 3년이 즐겁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차를 선택할 때 브랜드의 현재 가치뿐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인피니티를 고려 중인 분이라면, 현재 라인업과 잔존가치, 딜러 네트워크 상황까지 꼼꼼히 확인한 뒤 결정하시길 권합니다. 차 자체의 완성도와 브랜드의 지속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