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현대자동차는 독립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시켰습니다. 저도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현대차가 진짜 럭셔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아 GV80 구매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출시했을 때 GV80을 봤을 때, 너무 못생기고 성능은 독일 브랜드에 뒷떨어지고 내세울 건 옵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네시스 탄생
제네시스가 독립 브랜드로 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치밀한 인재 영입이 있었습니다.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를 디자인하고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한 루크 동커볼케, 벤틀리 디자인 총괄 출신 이상엽,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부가티 시론을 디자인한 알렉산더 셀리파노프, 그리고 BMW M 고성능 개발 총괄 출신 알버트 비어만까지 합류했습니다. 소위 "제네시스 군단"이라 불리는 이 라인업을 보면, 단순한 브랜드 리뉴얼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지한 프리미엄 도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처음부터 완전히 독립된 채널로 운영되었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토요타의 렉서스나 닛산의 인피니티는 브랜드 출범 초기부터 전용 매장 체계를 갖췄지만, 제네시스는 중장기적으로 채널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방향만 제시했습니다. 이 점은 초기 브랜드 경험을 일관되게 전달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고 저는 봅니다. 가격 전략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전작 에쿠스가 미국에서 약 50,000달러대에 출시됐던 것과 달리, G90은 72,200달러부터 시작했습니다. 가성비 프리미엄에서 진짜 프리미엄으로 포지셔닝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제가 중고차 앱과 유튜브를 뒤지며 GV80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느낀 점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 가격이면 수입 브랜드 살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런데 옵션이나 실내 공간은 확실히 낫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밀리룩
제네시스의 디자인 언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방패형 크레스트 그릴(Crest Grille)입니다. 크레스트 그릴이란 방패 형상을 모티프로 설계된 전면부 그릴로, 제네시스의 모든 라인업에 공통으로 적용된 시그니처 디자인 요소입니다. 로고보다 그릴이 먼저 눈에 들어올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 특징입니다. 2020년대 이후 출시된 모델부터는 쿼드 램프(Quad Lamp) 헤드라이트 시스템이 추가됐습니다. 쿼드 램프란 헤드램프를 좌우 각각 2개씩 총 4개의 모듈로 분리해 배치하는 방식인데, 이것이 방패를 감싼 날개 엠블럼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GV80을 처음 봤을 때 이 두 줄 라이트가 주는 인상이 꽤 강렬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국산차에서 이 정도의 패밀리룩 완성도를 보게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만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완성되는 건 아닙니다. 제가 GV80을 공부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주행 역동성이었습니다.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측면, 즉 소음·진동·충격 억제 성능은 동급 대비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BMW X5나 아우디 Q7처럼 스티어링 피드백(steering feedback)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주행 감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스티어링 피드백이란 운전자가 핸들을 통해 도로 상황을 직접 느끼는 감각으로, 운전 재미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제네시스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부드러운 세팅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제네시스가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 지금 단계에서 갖춰야 할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티어링 피드백과 섀시 튜닝의 정밀도 향상
- 소프트웨어 안정성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완성도 제고
- 독립 전용 딜러 채널을 통한 일관된 고객 경험 구축
- 브랜드 헤리티지를 축적할 수 있는 장기 레이싱·문화 프로그램
전동화 전망
2021년 제네시스는 2025년 이후 모든 라인업을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피터 란차베키아 제네시스 전미 딜러 자문위원회 회장이 "아직 순수 전기차를 살 준비가 안 된 고객이 많다"며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강력하게 요청한 것도 이 흐름을 반영합니다. 여기서 EREV(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이라는 방식도 검토 중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EREV란 전기차에 내연기관 엔진을 발전기로 탑재해 주행 가능 거리를 크게 늘리는 방식으로, 완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중간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GV70에 먼저 적용 후 다른 라인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제 경험상 GV80을 살 때 가장 발목을 잡았던 게 연비 문제였습니다. 2.5T 가솔린 터보 엔진 기준으로 복합 연비가 동급 대비 썩 우수하지는 않습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Mild Hybrid Electric Vehicle)를 도입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란 전기 모터가 엔진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완전 충전 없이도 연비를 10~15% 개선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2024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엔진 개발 조직을 재편하고 후륜 하이브리드용 변속기 개발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전기차 전환 계획 수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후퇴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봅니다.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은 아직 20%대에 머물고 있으며(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프리미엄 세그먼트 소비자일수록 차량 교체 주기가 길고 충전 인프라에 민감합니다.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 역시 기대보다 느린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출처: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개인적으로 하나 더 바라는 게 있습니다. 급발진 문제입니다. 한 해에도 수많은 운전자가 이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칩니다. 제네시스가 고성능 전자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원인 규명에 진지하게 나서서 업계 최초로 해법을 제시하는 브랜드가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간 중심의 진보(Human-centered Luxury)"를 증명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네시스는 지금 딱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가성비 좋은 프리미엄"이라는 첫 번째 문은 이미 열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주행 감각, 브랜드 스토리, 그리고 장기 품질 신뢰를 쌓는 두 번째 문입니다. GV80 구매를 고민 중이라면, 풀체인지 이후 파워트레인 개선 내용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기다리는 중입니다.